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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때문에 멈추는 일 없이 일본어를 읽고 싶다

작성 2026년 10월 13일

업데이트 2026년 10월 13일

넘기 힘든 한자의 벽

일본어 공부 기간 1n년. JLPT N1 자격증 2번 취득. 일본인만 있는 현지 회사에서 일한 경험 있음. 일본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 없음.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성과도 있다고 자부하는 일본어 학습자의 현재 스펙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본어를 접할 때 장벽이 느껴지는 한 가지 영역이 있다. 바로 한자가 포함된 긴 일본어 텍스트 읽기다. 일본어를 공부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공감할 것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자를 평소 접할 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공부해야 할 글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점 또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공부를 오래 하고 많이 해도 이 장벽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것 같다. 레벨이 올라가도 그 레벨에 해당하는 새로운 어려운 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아는 한자가 점점 많아지면 신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공부해도 여전히 모르는 한자가 등장해서 막히면 답답해진다. 뜻은 알아도 발음을 모르겠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하나의 글을 읽으면서 멈칫하는 횟수가 생각보다 많아진다. 읽기 연습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까막눈 체험하는 것 같아 동기 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모처럼 마음 먹고 시작해도 모르는 한자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느라 읽고 있는 글의 내용이 뭔지 잘 모르겠고 막연해져서 그만 두곤 한다.

아예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일본어를 정말 잘 읽고 싶어서 일본 웹사이트를 찾아 다니면서 일부러라도 일본어 텍스트에 노출시키기도 하지만 금방 피곤해져서 오래 못 본다. 포부를 가지고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대본이나 영화 감독 자서전 같은 것도 샀는데 결국 소장용으로 책장에만 계속 꽂혀 있다. 그래도 이런 노력이나마 조금씩 하다 보니 예전보다는 많이 익숙해지긴 했다. 하지만 과연 이 벽을 완전히 넘어서는 게 가능은 한 걸까?

후리가나가 필요한 이유

일본인들도 처음부터 모든 한자 독음을 다 알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익히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 이미 존재한다. 한자 위에 작게 히라가나로 독음을 표기하는 것, 이를 후리가나라고 한다. 일본어 학습 교재를 비롯해서 일상에서 꽤 자주 볼 수 있고 웹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일본어와 중국어 같은 동아시아 한자권 언어에서 쓰이는데 한자 독음 표기를 위한 HTML 엘리먼트인 ruby도 존재한다. 중국어의 경우에는 이런 표기법을 병음(Pinyin, 拼音)이라고 부르며 로마자로 표기한다는 차이가 있으나 시멘틱 HTML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일본어와 동일하게 ruby 엘리먼트를 사용한다고 한다. 사용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일본어
<ruby lang="ja">
  日本語
  <rt>にほんご</rt>
</ruby>

// 중국어
<ruby lang="zh-CN">
  汉
  <rt>hàn</rt>
  字
  <rt>zì</rt>
</ruby>

중국어에서는 이를 교육용 목적에 한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일본어에서는 조금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편이다. 교육용만이 아니라 만화, 소설, 뉴스,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도 필요에 따라 원어민도 읽기 어려운 한자나 이름에 후리가나를 붙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중국어는 전혀 모르고, 모국어인 한국어에도 한자어가 많지만 한글 표기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한자를 쓰더라도 독음을 해당 글자 위에 붙이는 게 아니라 옆에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후리가나가 일본어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웹 개발자로 일하면서도 ruby 엘리먼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Furigana 서비스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프로그래밍 언어 Ruby와의 연관성

여담으로 개발자 입장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프로그래밍 언어 Ruby 또한 후리가나용 HTML 엘리먼트인 ruby와 간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Ruby를 만든 마츠모토 유키히로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Ruby를 만들 때 Per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Perl과 발음이 비슷한 Pearl은 진주를 의미하니까 자신이 만드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에도 보석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고, 동료의 탄생석을 참고해 Ruby를 선택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주와 루비는 여러 가지로 서로 이어지는 관계가 있었고, 그래서 Ruby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 Perl보다 새롭고 더 나은 언어라는 의미에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탄생석의 순서상으로 진주는 6월, 루비는 7월을 의미하며, 19세기 영국의 인쇄업계에서는 관행적으로 글자 크기를 보석에 비유했는데 진주는 5pt, 루비는 5.5pt를 의미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인쇄 용어가 일본에 도입되면서 ルビ(루비)라는 표현으로 정착되었고 오늘날에도 일본 출판업계에서는 한자에 발음을 붙이는 작업을 「ルビを振る」(루비를 달다)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곧 HTML 엘리먼트 ruby의 유래가 되었다.

Furigana를 만드는 이유

6년 정도 웹 개발자로 일하고 난 후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점이 왔다. 나는 스스로가 개발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재미있었고, 열심히 노력했고,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성장하는 것 자체가 나의 목표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조금 부족해도 내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었다.

때마침 AI로 인해 일하는 방식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AI가 잘하는 게 무엇인가 봤더니 딱 내게 제일 부족한 개발 지식과 능력이었다. 반면 AI가 못하는 건 내가 잘할 자신이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떻게 할 것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왜 하는지를 정의하고 작은 단위의 작업들을 이어 붙여서 설계했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왜 후리가나인가?

처음에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만드는 수준의 토이 프로젝트로 시작해 보려고 했다. 그래서 눈에 들어온 것이 후리가나였다. 10년 넘게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여전히 한자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해결하고 싶었다. 당연히 한번에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고 모든 언어 공부의 왕도가 그렇듯이 그 언어에 꾸준히 많이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과정의 피로감을 줄여줄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존재하는 후리가나 생성 프로그램이 여러개 있고 나도 이것들을 필요에 의해서 사용해 보았지만, 사전적인 정의에만 기반하다 보니 문맥에 맞지 않는 독음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LLM의 도움을 받으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빠르게 만들어 볼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다양한 문맥 별로 자연스러운 후리가나를 생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모델이라도 치명적인 독음 판단 오류를 100% 피할 수 없었고, 입력값이 길어지면 퀄리티가 더욱 뭉개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모든 문제를 모델 스펙만 올려서 대응할 수도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입력값을 작은 단위로 나누려면 입력값에 비해 기나긴 문맥을 요청마다 중복으로 포함하거나 문맥을 어느정도 희생해서라도 비용을 사수하는 것 중에 나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둘 다 검증해 보았지만 유의미한 개선은 없었다.

게다가 입력값의 길이에 대한 문제는 일부에 불과했다. 그 외에도 비용과 성능 그 어느 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했다. LLM 쓰면 금방 만들겠지, 라고 생각하며 시작했고 실제로 MVP는 금방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프로덕트로 운영 가능한 수준으로 퀄리티와 비용을 관리할 수 있으려면 결국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모델이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요구사항과 작업 단위를 검증하고 시스템의 전후 처리 과정을 통해 성능을 개선하는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모델 자체도 업데이트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될 실험과 개선 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탐구해 나가고 있다. 추후 포스팅에서 후리가나 생성 파이프라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할 예정이다.

왜 웹 서비스인가?

단순히 자동으로 후리가나를 달아주는 기능이 필요하다면 간단한 형태로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을 구현할 수도 있다. 웹 서핑 흐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데스크탑이나 모바일 앱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웹 서핑 흐름은 산발적이기 때문에 내가 읽고 싶은 일본어에 후리가나를 달았던 기록을 어딘가에서는 관리할 수 있어야 학습 도구로서 의미도 있고 확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후리가나 생성 기록 관리 페이지로서의 단순한 웹사이트를 구상해 보니 무언가 아쉬웠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형태로 시작하겠지만 조금 더 본격적인 일본어 학습 포털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 다양한 일본 크리에이터들의 채널을 즐겨 보는데, 어떤 크리에이터가 매 영상마다 대본을 Patreon에 올려서 구독자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보고 아예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이런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일본 크리에이터들을 발견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사용자 또한 참여자로서 자신만의 텍스트를 올릴 수 있는 커뮤니티형 콘텐츠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결국 Furigana는 문맥에 맞는 적절한 후리가나를 자동으로 달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궁극적으로는 일본어를 읽을 때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을 콘텐츠에 대한 흥미와 기대감으로 바꾸고 일본 드라마나 애니를 챙겨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본어 텍스트를 즐길 수 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면 일본어 학습자를 위한 Note나 Zenn, Qiita 같은 커뮤니티형 콘텐츠 플랫폼, 또는 조금 더 넓게 본다면 일본어 학습자를 위한 YouTube 같은 크리에이터 기반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존 플레이어인 Satori Reader가 "일본어 읽기 학습을 위한 넷플릭스"로 자신들의 서비스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서 Furigana의 차별점은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생각해 본 목표이다.

장기적으로 웹이라는 틀을 벗어나 한 가지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은, 일본어 텍스트를 읽을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어쩌면 오프라인에서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폰트의 특성상 읽기 어려운 경우도 꽤 자주 있는 것 같고, 일본어의 특성상 어려운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책은 전통적인 다테가키(縦書き), 즉 수직 방향으로 문장이 이어지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방식으로 인쇄되는 경우가 많다. 소장중인 일본어 서적이 전부 이렇게 되어 있어서 이 책들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을 찾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과제가 될 것 같다.

왜 일본어인가?

마지막으로 내가 언어 학습 중에서도 일본어에 집중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예를 들어서 영어는 독보적인 제1 외국어이다 보니 영어를 주제로 한 서비스도 워낙 많고, 그런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영어는 꼭 배워야 하고 잘하면 잘할수록 좋은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받는다. 그런데 일본어 같은 제2 외국어를 주제로 선택하는 데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예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단순히 '일본어 공부하다가 필요해서'라는 설명은 조금 애매해 보인다. 그보다는 이게 나라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들고 있다. 나는 외국인으로서 일본어를 배울 때 느끼는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비교적 덜 힘들게 느낀다. 우선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일본어와 어순이 동일하고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 문법 및 어휘가 비슷해서 외국인으로서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 중에 따지면 가장 유리한 태생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이웃 국가의 언어를 상대적으로 쉽게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 온 경험들이 희한하게 나를 계속 일본어에 대한 특별한 열심으로 이끌어 왔다. 한자를 배워야 지식인이 된다고 강조한 아빠 덕분에 어린 시절 한자를 열심히 공부했던 것,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 때 남들은 영어과 가고 싶어하는데 1지망으로 일본어과에 지망해서 합격했던 것, 기숙사에서 몰래 밤새워 일본 드라마를 보고 수능과는 상관 없는 일본어 공부를 유난히 열심히 했던 것,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일본에 가 구직 활동을 했던 것, 쉬는 날도 별로 없이 투잡 뛰고 매일 야근까지 해가면서 일본 회사에서 일했던 것, 한국에 돌아와서 개발자로 일하면서도 일본어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계속 공부해왔던 것,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이 모든 게 나의 의지나 능력으로 되어 온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해 오신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어를 매개체로 연결하고 싶은 것

앞으로의 과정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9월 예상치 못한 기회로 오사카에 가서 일본의 크리에이터 분들을 상대로 Furigana의 Pitch Deck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때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 받으며 Furigana에 관심을 보여주셨던 분들의 얼굴과 환한 미소가 내 마음에 생각보다 인상 깊게 남았다. 곧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11월 말에 오사카에 가서 조금 더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번에는 크리에이터분들과도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가능하면 잠재적 사용자인 외국인 일본어 학습자들과도 접점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결국 일본어는 수단일 뿐, 나는 Furigana를 통해서 일본인 분들과도,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습자들과도 연결되어 가는 과정이 기대된다.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 내가 대리인으로 있는 라이프이즈워십스튜디오의 진짜 대표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왜 이 일이 맡겨졌는지 잘 알고 있다. 일본어를 매개체로 나와 연결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겠지만 이게 가장 솔직한 이유다. 앞으로도 Furigana와 관련된 내용을 개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기록으로 공유할 예정이니 혹시라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팔로업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9